아버지, 그들을 용서해주세요

용서극도로 고통스러운 사형으로 십자가형이 집행되었던 갈보리의 충격적인 장면을 잠시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지금까지 고안된 처형 중 가장 잔인하고 굴욕적인 형태로 간주되었으며 가장 멸시받는 노예와 최악의 범죄자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왜? 이는 로마 통치에 대한 반란과 저항을 억제하는 사례로 수행되었습니다. 벌거벗은 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피해자들은 종종 주변 구경꾼들에게 저주와 모욕의 형태로 무력한 절망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곳에 있던 군인들과 구경꾼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용서의 말씀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장3,34). 용서를 구하는 예수님의 요청은 세 가지 이유에서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예수께서는 모든 일을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욥의 다음과 같은 말을 연상시키는 깊고 사랑에 찬 신뢰의 표현입니다. “보라, 그가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그를 기다린다. "내가 내 길로 그에게 보응하리라"(욥 1장)3,15).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된 길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죄에서 해방되시고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려가셨기 때문에 스스로 용서를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 조상의 길을 본받아 헛된 행실을 좇아 순전하고 더러움이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1. 베드로 1,18-19). 그분은 자신을 사형 선고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과 모든 인류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셋째,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는 일회성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어 원문은 예수께서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는 자신이 시련을 겪는 가장 암울한 순간에도 동정심과 기꺼이 용서하려는 의지를 계속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가장 깊은 필요 속에서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 부르짖으셨을지 상상해 봅시다. 그는 해골 현장(Skull Site)으로 알려진 곳에 도달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그의 손목을 십자가 나무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졌고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렸습니다. 야유와 저주를 퍼붓는 군중에 둘러싸여 그는 군인들이 자기 옷을 서로 나눠주고 그의 솔기 없는 옷을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죄의 심각성과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심연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무한한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옮기시나니” (시편 10편)3,11-12).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용서를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입시다. 그분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활기차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로 데려가시기 위해 궁극적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낯선 사람이나 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화목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통해 용서를 받은 것처럼, 우리는 동료 인간과의 상호 작용에서 이 사랑과 용서를 반영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두 팔을 벌리고 마음을 열고 이해하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영감을 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배리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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