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398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경멸적인 비판으로 "궁극의 무신론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경전이 특히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에 퇴폐, 타락, 복수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로 신에 대한 위대한 생각이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그는 오래된 죽은 신앙이라고 불렀음)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옛 신이 죽었다”는 소식으로 자신과 같은 철학자와 자유사상가들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니체에게 있어 좁은 한계를 통해 사람들의 기쁨을 빼앗는 억압적인 믿음에서 벗어난 "명랑한 과학" 사회에 새로운 새벽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무신론자의 입장에 서 있습니까?

니체의 철학은 많은 사람들이 무신론을 받아들이도록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환영하고 하나님이 죽은 척하는 기독교의 한 형태를 정죄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니체가 어떤 신이든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고 어떤 종류의 믿음도 어리석고 해로운 것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철학은 성경적 기독교에 반대하며, 이는 우리가 그나 다른 무신론자보다 우위에 있기를 원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소명은 사람들(유신론자를 포함하여)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즐거운 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삶의 방식을 동료 인간에게 본보기로 함으로써 이 소명을 수행합니다.

398 신은 죽었다 Nietzsche니체를 비웃는 스티커(왼쪽과 같은)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고려되지 않은 것은 니체가 정신을 잃기 년 전에 그가 신에 대한 그의 견해를 바꾸었음을 나타내는 여러 시를 썼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중 하나입니다.

 

안돼! 네 모든 고문과 함께 돌아와!
외로운 사람의 마지막까지. 오, 돌아와!
내 눈물이 모두 당신쪽으로 달리고 있어요!
그리고 내 마지막 마음의 불꽃  당신은 그것에 빛납니다!
오, 돌아온다, 나의 미지의 신! 내 고통! 마지막 행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오해

계속해서 무신론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하나님에 대한 허위 진술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보다 복수심 많고 오만하고 징벌적인 하나님으로 잘못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느님, 그분을 믿는 신앙의 삶을 받아들이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삶의 길을 떠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정죄받고 억눌린 자의 삶을 사는 대신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계속되는 사역에 즐겁게 참여하는 것입니다(요 . 3,16-17).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기 때문에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심판을 통해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을 지적하십니다. 이러한 길은 우리를 그분과의 교제에서 멀어지게 하는 길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은혜 덕분에 복지와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의 심판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인 우리를 거스르는 모든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의 심판은 종종 심판으로 이해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에게 무엇이 생명으로 인도하고 무엇이 사망으로 인도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분의 심판은 우리가 죄나 악에 대한 정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은 죄의 권세를 정복하고 죄의 노예 상태와 그 최악의 결과인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가 유일하고 참된 자유, 즉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살아 있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기를 원하십니다. 니체의 오해와 달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보복의 압력을 받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것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즐거운 삶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몇몇 사람들이 스포츠 분야에서 받는 설명을 좋아합니다. 기독교는 관중 스포츠가 아닙니다. 불행히도 일부 사람들은 이것조차 잘못 해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구원을 위해 뭔가를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구원을 위한 선행(우리를 강조함)과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그를 강조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교 무신론자?

"기독교 무신론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신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사용됩니다. 신실한 신자는 예수의 헌신적인 추종자가 되는 것을 중단함으로써 기독교 무신론자가 될 수 있습니다. 활동(기독교 레이블이 붙은 활동이라 할지라도)에 너무 몰두하여 시간제 예수 추종자가 되어 그리스도보다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교회 생활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고수함으로써 그들은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고 능동적인 구성원이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완전히 통제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부조종사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승무원이 되어 때때로 요청한 것을 가져다 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종사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실생활로 인도하는 방향을 제시해 주십니다. 진실로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교회 공동체에서의 하나님과의 참여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많은 자녀를 그와 함께 영광으로 인도하라고 부르십니다(히 ). 2,10). 그분은 복음에 따라 생활하고 나눔으로써 세상을 향한 그분의 사명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이 일을 합니다("봉사는 팀 스포츠입니다!"). 아무도 모든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친교 안에서 우리는 함께 주고 받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세우고 강화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우리에게 훈계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회중을 버리지 않습니다(히 ). 10,25)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는 이들의 공동체로 부르신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삶을 기뻐하십시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충만함"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10,9-11). 이것은 보장된 부나 건강을 보장하는 삶이 아닙니다. 항상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양자로 받아주신 것을 알고 삽니다. 압박감과 수축의 삶 대신 희망과 기쁨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악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정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을 위한 미래는 없으며 과거는 우리가 믿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은 화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계 2 고린도1,4-5). 친애하는 친구와 직원 여러분,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당신이 그를 포기하더라도 하나님은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선언합니다(요한 1서 4,8) – 사랑은 그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그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살았거나 살게 될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고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Friedrich Nietzsche와 다른 모든 무신론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종을 앞두고 회개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경험한 니체에게도 도달하기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조셉 티 카치

대통령
GRACE COMMUNION INTERNATIONAL


PDF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