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 : 절망의 여호와

필사적으로 504 시편 8 아저씨분명히 적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절망감에 가득 찬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상기함으로써 새로운 용기를 얻었습니다.

"Gittit에서 부를 다윗의 시편. 우리의 통치자이신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늘에서 주의 위엄을 나타내소서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당신은 당신의 적들을 위해, 원수와 복수심에 불타는 자들을 멸할 힘을 만들어 냈습니다. 내가 하늘과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과 주의 베푸신 달과 별들을 볼 때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기억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양과 소와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다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 우리 통치자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편 8,1-10). 이제 이 시편을 한 줄씩 살펴봅시다. 여호와의 영광: "주 우리 통치자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늘에서 주의 위엄을 나타내소서"! (찬송가 8,2)

이 시편의 처음과 끝(2절과 10절)에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표현하는 다윗의 말이 있습니다. 그의 광채와 영광은 그의 모든 창조물(시편 저자의 원수를 포함하여!)을 훨씬 능가합니다. "주님, 우리 통치자"라는 단어의 선택은 이것을 분명히 합니다. 처음 언급된 "주"는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인 YHWH 또는 야훼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통치자”는 아도나이, 즉 주권자 또는 영주를 의미합니다. 함께 찍은 사진은 자신의 피조물을 절대적으로 다스리는 인격적이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예, 그분은 하늘에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이어지는 시편에서와 같이 다윗이 그의 규례를 제시하고 그의 소망을 표현할 때 다윗은 이 하나님에게 호소하고 호소합니다.

여호와의 능력: "주의 원수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권세를 주사 원수와 보복자를 멸하시며"(시편 8,3).

다윗은 주 하나님이 자녀의 "보잘것없는" 힘(힘은 신약성서에서 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를 더 잘 반영함)을 사용하여 원수와 복수하는 자를 멸절시키거나 종식시키기 위해 준비하시는 것에 놀랐습니다. 주님께서 이 연약한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을 사용하여 확실한 발판 위에 무쌍의 강함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하느님의 적들은 정말 아이들에 의해 잠잠해집니까? 아마도 자녀를 둔 다윗은 비유적으로 작고 약하고 무력한 존재들을 이끌고 있을 것입니다. 압도적인 권력 앞에서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되었으며,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신 주님께서 자신의 일을 위해 무력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에게 위안이 됩니다.

주님의 창조: “내가 하늘과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과 주의 베푸신 달과 별들을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그를 기억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 시편 8,4-9).

이제 다윗의 생각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그의 통치의 일부를 인류에게 은혜롭게 양도하셨다는 압도적인 진리로 바뀝니다. 먼저 그는 위대한 창조의 역사(하늘…달과…별을 포함하여)를 하나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유한한 사람(히브리어 단어는 enos, 더 죽을 것, 약한 사람을 의미)에 대한 자신의 놀라움을 표현합니다. 그만큼 많은 책임이 주어진다. 5절의 수사학적 질문은 사람이 우주에서 보잘 것 없는 피조물임을 강조합니다(시편 14편4,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크게 돌보고 계십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강력하고 가치 있는 일로 제시됩니다. 사람은 하나님보다 조금 낮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엘로힘은 엘버펠트 성경에서 "천사"로 번역되지만 아마도 여기서는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 요점은 사람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피조물보다 위에 있지만 하나님보다 낮습니다. 다윗은 전능자께서 유한한 인간에게 그러한 영예로운 자리를 주신 것에 놀랐습니다. 히브리어로 2,6-8 이 시는 인간의 실패와 그의 숭고한 운명을 대조하기 위해 인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인자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1. 고린도전서 1장5,45; 47) 모든 것이 그에게 종속됩니다. 육신으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의 길을 예비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드높일 계획을 완성(찬미)하실 때 온전히 실현되는 상태입니다.

너는 네가 손에 던져 주신 모든 일, 곧 양과 소와 야생 짐승과 하늘 아래있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서 다스리게 하셨다.

이 지점에서 다윗은 그의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청지기)로서의 사람의 위치에 들어갑니다. 전능하신 분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 그들에게 땅을 다스릴 것을 명하셨습니다(1. 모세 1,28). 모든 생명체는 그것들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 통치는 결코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비극적으로 운명의 아이러니가 말하듯이 그들보다 열등한 피조물인 뱀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그들의 운명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여호와의 영광: "우리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편 8,10).

시편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주님의 영광은 자신의 보살핌과 섭리에 계시되며, 인간은 그분의 유한 함과 연약함을 고려합니다.

결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다윗의 통찰력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서 완전히 실현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미 최고 통치자이신 주님이심을 배웁니다(에베소서 1,22; 히브리서 2,5-9). 오는 세상에서 번성할 지배(1. 고린도전서 1장5,27). 우리의 비참함과 무력함에도 불구하고(우주의 광대함에 비하면 아주 작음) 우리가 주님이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받아들여지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주님의 지배권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일입니까?

테드 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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