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가 마지막이어야합니다!

439 첫 번째가 마지막이어야합니다.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계속해서 나오는 진술은 마태복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9,30).

예수는 반복적으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현상 유지를 폐지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을 하는 것 같다. 팔레스타인에 살던 세기 유대인들은 성서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비 학생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혼란스럽고 속상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랍비들은 그들의 부로 인해 높은 존경을 받았고, 이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종교적 사다리에서 "최초"에 속했습니다.

또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와서 하나님의 왕국에서 식탁에 앉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라, 꼴찌가 되고 먼저가 될 것이다. 첫째가 나중이 될 것이다”(누가복음 13:28-30 Butcher Bible).

성령의 영감을 받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사촌 엘리사벳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을 사방으로 흩으셨습니다. 강한 자를 폐하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셨도다"(누가 1,51-52 New Geneva 번역). 아마도 여기에 교만은 죄의 목록에 있고 하나님은 가증한 분이라는 단서가 있습니다(잠언 6,16-19).

교회의 세기에 사도 바울은 이 역순을 확증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바울은 "첫 번째"에 속했습니다. 그는 인상적인 혈통의 특권을 가진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립보서 3,5).

바울은 다른 사도들이 이미 경험 많은 사역자들이었을 때 그리스도의 사역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언자 이사야를 인용하여 고린도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세상에서 약한 것을 하나님이 택하사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려 하셨으니 (1. 고린도 1,19 및 27).

바울은 같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또 다른 경우에는 500명의 형제들에게, 그 다음에는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후 마침내 "때가 이르지 않은 나신 것 ​​같이"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힌트? 약하고 어리석은 자가 지혜롭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종종 이스라엘의 역사 과정에 직접 개입하셔서 예상되는 순서를 뒤집으셨습니다. 에서는 맏아들이었지만 장자권은 야곱이 물려받았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장자였지만 장자권은 이삭에게 주어졌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할 때에 므낫세가 아니라 작은아들 에브라임에게 안수하였더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그로 인해 백성을 다스릴 때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중 하나인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돌보고 있었고 그의 기름부음에 참여하기 위해 소환되어야 했습니다. 막내로서 그는 이 자리에 합당한 후보자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다른 모든 더 중요한 형제들 위에 선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의 거의 전체가 그들에게 바쳐졌습니다. 그들은 회당의 좋은 자리를 좋아하고 광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였으며 사람들은 그들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대중의 승인을 위해 모든 것을했습니다. 중요한 변화가 곧 올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리고 당신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집이 황무지가 되리라”(마태복음 2장)3,37-38).

권세 있는 자를 폐하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셨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과 선물이 무엇이든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교만은 사탄의 몰락의 시작이며 우리 인간에게 치명적입니다. 그가 우리를 잡으면 우리의 전체 관점과 태도가 바뀝니다.

그의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고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흥미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스르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장 절)2,32).

이것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최종 판결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많은 경이로움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진실하고 경이 롭지 만 예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그들은 그에게 사인을 요구했다. 그것은 성령에 대한 죄였습니까? 아직도 용서가 가능합니까? 그녀는 자부심과 열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녀가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언제나처럼 예외는 있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께 와서 더 알기를 원하였으나 산헤드린이 두려워 3,1). 그는 나중에 아리미대아 요셉과 함께 무덤에 예수의 시신을 뉘었습니다. 가말리엘은 바리새인들에게 사도들의 설교를 반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사도행전 5,34).

왕국에서 제외 되었습니까?

요한계시록 20,11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자들의 남은 자"를 심판하시는 백보좌 대심판에 대해 읽습니다. 당시 사회의 "최초"인 이스라엘의 저명한 교사들이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마침내 볼 수 있었습니까? 이것은 훨씬 더 나은 "표시"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왕국 자체에서 제외됩니다. 그들은 그들이 멸시하던 동서남북의 백성을 봅니다. 성경을 아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던 사람들이 지금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에 식탁에 앉고 있습니다(눅 1장).3,29). 무엇이 더 굴욕적일 수 있겠습니까?

에스겔 37장에 유명한 "뼈밭"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무서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마른 뼈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모여들고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이 뼈들이 온 이스라엘 족속(바리새인 포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다. 보라 이제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며 우리의 마지막이 다 하였나이다”(에스겔 3장)7,11). 그러나 하나님은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그 무덤에서 나오게 하여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거기에서 나오게 할 때에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내 생기를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다시 살리라 내가 너희를 너희 땅에 두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겔 3장)7,12-14).

왜 하나님은 마지막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을 두셨습니까? 왜 마지막 사람이 첫번째 사람이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사랑 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와 관계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온전한 뜻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회개의 값진 선물을 줄 수 있습니다.

힐러리 제이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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