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 그는 우리 안에 산다!

645 우리 안에 사는 성령때때로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십니까? 성령은 당신을 위해 그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그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임재를 경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우리를 위해 여기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참석합니까? 그 대답은 오늘날 초기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경험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습니까?

Gordon D. Fee는 그의 저서“God 's Empowering Presence”에서 성령의 본질과 활동에 대한 학생의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해할 수 있지만 성령은 나에게 회색의 직사각형 흐릿함이다.”라고 학생이 말했다. 그러한 불완전한 관점은 부분적으로 성령이 바로 그 영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예수님 께서 말씀하신대로 바람과 같아서 보이지 않습니다.

발자국 없음

한 기독교 학자는 "성령은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간과되고 쉽게 오해됩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더 확고한 기반 위에 있습니다. 우리 구주께서 사람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의 몸으로 우리 가운데 사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얼굴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들 하나님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 "얼굴"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본 사람들이 아버지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그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보는 사람은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요한복음 1장4,9). 아버지와 아들 둘 다 오늘날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십니다. 그들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인들 안에 존재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확실히 영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싶습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친밀함을 경험하고 그의 사랑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우리의 위안 자

사도들에게 성령은 조언자 또는 위로자입니다. 그는 궁핍하거나 나약할 때 도움을 주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영도 우리의 연약함을 돕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친히 중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 충만함으로 영적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죄악의 노예가 아니며 영감과 하나님과 하나됨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요 신령한 자니 이는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심이라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그의 사람이 아니요”(로마서 8,9). 이것은 사람들이 회심할 때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일으키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소원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바울은 이 변화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하심 »(디도서 3,4-5). 성령의 임재는 회심의 정의적 실재입니다. 정신없이; 전환 없음; 영적인 거듭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은 단순히 성령과 관계를 맺는 다른 방식입니다. 반면에 사람이 진정으로 회심하면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 안에 거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의 영으로 그들을 그의 것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

어떻게 우리 삶에 성령의 능력과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신약의 저자들, 특히 바울은 자격이 있다는 것은 호소에 대한 사람의 반응의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호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성령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의 인도를 받고 영으로 행하며 영의 생활을 하도록 격려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하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신약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과 영이 새롭게 되어야 하며 새로운 열매가 자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신약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이러한 특성은 개념이나 좋은 생각 그 이상입니다. 그것들은 성령께서 주신 신자 안에 있는 참된 영적 능력을 반영합니다. 이 힘은 모든 상황에서 사용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덕을 실천하면 열매가 되고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는 증거가 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는 길은 하나님께 성령의 선한 임재를 구하고 인도받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실 때, 성령은 또한 성령을 따라 사는 신자 개개인을 통해 교회와 그 기관의 생명을 강하게 하십니다. 즉, 우리는 프로그램, 예식, 신앙과 같은 교회 생활의 측면을 사람들의 삶에서 성령의 역동적인 활동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신자들의 사랑

성도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증거나 자질은 사랑입니다. 이 특성은 하나님이 누구인지의 본질을 정의하고 영이 이끄는 신자를 식별합니다. 사도 바울과 다른 신약의 교사들이 처음부터 항상 관심을 두었던 것은 바로 이 사랑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이 성령의 사랑을 통해 강화되고 변화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영적 은사, 예배, 영감받은 가르침은 교회에서 중요했고 지금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 안에서 성령의 사랑이 역동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 바울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로 말할 수 있고 천사의 언어로도 말할 수 있지만 사랑이 부족하면 스스로 종을 울리거나 울리는 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 고린도전서 1장3,1).
  • 그는 예언적 영감을 받고 모든 하늘의 비밀을 알고 모든 지식을 갖고 산을 옮길 수 있지만 사랑 없이 살아야만 하는 믿음을 가졌다면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2절). 성경 지식, 신학적 정통, 또는 강한 믿음의 저장소조차도 능력을 성령의 사랑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불 속에서 죽였으나 내 삶에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3절). 자기를 위한 선행도 하지 않는 것을 성령의 사랑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과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자는 성령의 능동적 임재와 성령의 응답이 필수적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 즉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이 반영되도록 새로워지고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랑으로 인도되고 사는 삶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 성령은 당신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입니다.

폴 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