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실성

616 구원의 확실성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 께서 우리를 의롭다 고 여기시는 것은 그리스도 께 빚지고 있다고 거듭 주장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죄를 짓지 만, 그 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옛 자아에 포함됩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있는 것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 죄와 싸울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8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미래에주의를 돌립니다.

예수님이 구속하신 온 우주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죄와의 싸움은 피곤합니다. 계속되는 박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파렴치한 사람들과 함께 타락한 세상의 일상을 견디는 것은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8,18).

예수 께서 인간으로이 땅에 살 때 자신의 미래를 바라 셨던 것처럼 우리도 현재의 시련이 미미해 보일 정도로 놀라운 미래를 고대합니다.

우리만이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우주적 범위가 있다고 말합니다.

창조는 우리를 영광으로 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바울이 다음 구절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때 창조 자체도 변화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을 굴복시켰지만 희망에 따라; 피조물도 덧없는 종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20-21절).

창조는 이제 쇠퇴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합당한 영광이 주어지면 우주도 속박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온 우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구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풍성으로 그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그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시나니 이는 그의 피로써 화평을 이루사 십자가»(골로새서 1,19-20).

환자 대기 중

이미 대가를 치렀지만 하나님께서 다 이루실 것으로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보지 못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탄식하며 수고하는 것을 우리가 아노라"(22절).

피조물은 우리가 태어난 태를 형성하기 때문에 해산하는 것처럼 고통받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성령을 처음 익은 선물로 받은 우리도 속으로 탄식하며 그것을 사모하는 아들됨 곧 구속 우리 몸”(23절).
구원의 서약으로 성령을 주셨지만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싸 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께서 우리를 위해하신 일을 기뻐하고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하고있는 동안에도 죄와 싸우고, 신체적 한계, 고통과 고통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구원이란 우리 몸이 더 이상 썩어질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되어 영광으로 변화될 것임을 의미합니다.1. 고린도전서 1장5,53).

물리적 세계는 폐기할 쓰레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좋게 만드셨고 다시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이 어떻게 부활하는지, 새로워진 우주의 물리학을 알지 못하지만 창조주께서 그의 일을 완성하실 것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우주나 땅이나 우리 몸에 완전한 피조물을 보지는 못하지만 모든 것이 변형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는 희망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보는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리느니라”(24-25절).

우리는 우리 몸의 부활을 인내하고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는 이미 구속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정죄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왕국에 있지만 아직 충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측면들과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동안 다가올 시대의 측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영도 우리의 연약함을 돕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개입하시느니라”(26절).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와 좌절을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육신이 약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영이 원할 때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필요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위해 개입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연약함을 제거하지 않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는 옛 것과 새 것, 우리가 보는 것과 그가 우리에게 설명한 것 사이의 간극을 메워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할 때 죄를 짓습니다(로마서 7,14-25).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죄를 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사는 과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지라도 최종 결과를 보시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성령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개입하심이라”(27절). 성령께서 우리 편이 되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우리의 시련과 연약함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니"(28절).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지 않으시고 허락하시고 그의 규례에 따라 함께 역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우리는 그분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일을 완성하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이와 같이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사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그의 영광으로 우리를 연합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택하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과 같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 이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많은 형제들. 그러나 그가 미리 정하신 자들을 또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다. 의롭다 하신 이를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29-30절).

선택과 예정의 의미는 뜨거운 논쟁거리다. 바울은 여기서 이러한 용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구원과 영생을 위한 선택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복음 전파의 절정에 가까워지면서 독자들에게 구원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고자 합니다.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들도 얻을 것입니다. 수사학적 설명을 위해 바울은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일어난대로 좋습니다. 우리는 이생에서 투쟁한다 할지라도 다음 생에서는 영광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냥이기는 것 이상입니다.

«이제 이것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겠느냐” (31-32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주기까지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고 그의 선물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33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죄로 선언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심판 날에 우리를 고발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속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기 계시니 그가 죽으셨고 또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34절). 우리에게는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영광으로 가는 우리의 길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살아 계신 구주가 계십니다.

바울의 수사학적 능력은 이 장의 감동적인 절정에 나타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 합니까? 환난이나 두려움이나 핍박이나 굶주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입니까?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나이다 우리는 도살할 양처럼 존경을 받습니다”(35-36절). 상황이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시킬 수 있습니까?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면 전쟁에서 졌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바울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고통에서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기 때문에 승리자보다 낫습니다. 우리의 승리 상 – 우리의 상속 –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입니다! 이 가격은 비용보다 무한히 높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나 장래 것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38-39절).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가지고 계신 계획에서 아무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의 사랑에서 당신을 분리 할 수있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그의 사랑에서 당신을 분리 할 수있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에게 주신 구원,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놀라운 미래를 믿을 수 있습니다!

마이클 모리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