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평온함

신에서 걱정하지 않는 304오늘날의 사회, 특히 산업화된 세계는 점점 더 많은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언가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 부족, 수행해야 하는 압박(일, 학교, 사회), 경제적 어려움, 전반적인 불안, 테러, 전쟁, 폭풍 재해, 외로움, 절망감 등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일상적인 단어, 문제, 질병. 많은 분야(기술, 건강, 교육, 문화)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나는 은행 창구에 줄을 섰다. 내 앞에는 그의 유아(아마도 4살)를 데리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소년은 근심 걱정 없이 기쁨으로 가득 차 앞뒤로 뛰어다녔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도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습니까?

아마도 우리는이 아이를보고 (약간 질투심) "예, 그는 이생에서 그를 기다리고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너무 평온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이 경우 우리는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압력에 대처하고 미래에 긍정적으로 자신감을 가져야합니다. 불행히도,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부정적이며 어려움으로 자신의 삶을 경험하며, 전체 상황에서 하나님을 구하기 위해기도 생활을합니다.

우리 은행에있는 우리 아이에게 돌아 가자.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 소년은 자신감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서 열정과 즐거움,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뭔가를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여기시고 그분과의 관계는 자녀가 그의 부모보다 더 자연 스러워야합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면 아이여 그는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태복음 1장)8,2-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모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자녀를 가질 것을 기대합니다. 아이들은 대개 우울하지는 않지만 기쁨, 삶의 정신 및 자신감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인생에 대한 자녀의 태도를 기대합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압력을 느끼거나 깨기를 바라지 않지만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삶에 접근하고 하나님에 대한 확고부동 한 신뢰를 기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당신의 관대함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십니다. [빌립보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4-7).

이 말들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반영 하는가?

스트레스 관리에 관한 기사에서 나는 마침내 누워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치과 의자를 갈망했던 어머니에 대해 읽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치과 의사의 드릴 아래에서 "긴장을 풀고" 있는 것이라면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각자가 빌립보 사람들을 얼마나 잘 4,6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행동으로? 이 스트레스 받는 세상 속에서?

우리 삶의 통제는 하나님 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며 그분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신의 문제와 고난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때만 압박감에 처하게됩니다. 다시 말해 폭풍우에 집중하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해 얼마나 작은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기까지 한계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 우리는 단순히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고통과 고통으로 우리는 하나님 께 나아갑니다.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입니다. 그러나 특히 감사하기를 원하고 깊은 영적 기쁨을 가져 오는 순간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받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가 온전한 역사를 나타내어야 하리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2-4).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어려운 시기는 그를 온전케 하기 위해 영적인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길은 좁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어려움, 시련 및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인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해져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압제를 받아도 억눌리지 아니하고 출구가 없어도 출구를 찾지 않고 버림받지 않습니다. 버려도 망하지 않는다”(2. 고린도 4,8-9).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실 때, 결코 포기하지 않고 결코 자신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범이되어야합니다. 그는 우리 앞에 선사하며 용기를줍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는 환난을 당한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장 절)6,33).

예수님은 모든면에서 압제 당했고, 야당, 박해, 십자가 처형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거의 조용한 순간을 얻지 못했고 사람들을 벗어나야 만했습니다. 예수님도 한계에 밀렸다.

“그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들으심을 얻었으며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고난을 받았고, 순종했습니다. 온전하게 되사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 인정하시니라"(히브리서 5,7-10).

예수님은 큰 스트레스를 받아 살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에 맡기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아버지가 허용 한 모든 상황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실제로 압박을받을 때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진술을 읽습니다.

"지금 내 영혼이 괴로워합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아버지, 이 시간에서 저를 구원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이 때를 위하여 왔느니라”(요한복음 1장 절)2,27).

우리는 또한 삶의 현재 상황(시련, 질병, 환난 등)을 받아들이는가?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이 아닌 여러 해 동안의 시련까지도 우리 삶에서 특히 불편한 상황을 허용하고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십니다. Peter의 다음 진술에서 이 원칙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양심 때문에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 참는 것이 긍휼이니라. 너희가 죄와 죄를 이같이 견디면 무슨 영광이 있으리요 맞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 고난을 받으면서 참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하도록 부름받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가 없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자기를 넘기셨느니라"1. 베드로 2,19-23).

예수께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 시키 셨으며, 죄책감을 당하지 않으 셨으며 고난을 통해 우리를 섬겼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입니까? 그것이 불쾌 해지더라도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면 모든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어려운 상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성한 평화와 기쁨을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평화를 남깁니다. {나의} 평화를 줍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여 내가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장)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장)5,11).

우리는 고통이 긍정적임을 이해하고 영적 성장을 창출해야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자랑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시련이요 시련은 소망이 되는 줄 앎이로다 그러나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로마서 5,3-5).

우리는 고난과 스트레스에 빠져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이 상황을 견뎌내고 영적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 십니다. 실제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에게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씀을 읽 읍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고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 11,28-30).

우리는 예수님 께 나아가 야합니다. 그러면 그는 우리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우리의 짐을 던져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고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시리라! 그는 당신을 돌보고 있습니다." (1. 베드로 5,6-7).

우리는 얼마나 정확하게 우리의 걱정을 하나님 께 던집니까? 다음은이 점에 도움이되는 몇 가지 구체적인 사항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체 존재를 하나님 께 맡기고 위탁해야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우리의 전체 존재에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료 인간을 기쁘게하려고 할 때, 이것은 단순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갈등과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우리는 동료 인간에게 우리를 고통에 빠뜨릴 힘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우리의 삶을 결정해야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평화와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하느님의 왕국이 먼저 와야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게합니까? 다른 사람들의 인정?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망? 우리의 모든 문제를 제거하려면? 이것들은 스트레스를주는 모든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최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낫고 몸이 의복보다 낫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 {you}가 그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너희 중에 누가 염려로 그 수명을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리고 왜 옷에 관심이 있습니까? 들의 백합화가 자라는 것을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그 모든 영화를 입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면 더 이상 당신은 , 믿음이 적은 자여.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요? 또는: 우리는 무엇을 입어야 합니까? 이 모든 것은 민족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힘쓰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니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악은 날마다 족하다”(마태 6,25-34).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최우선으로 돌보는 한, 그분은 우리의 다른 모든 필요 사항을 충당 할 것입니다! 
무책임한 라이프 스타일을위한 자유로운 통과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족을 위해 빵과 보살핌을 얻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의 우선 순위는 이미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혼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갑자기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위한 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집중과 우선 순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이 갑자기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됩니다.

기도 할 시간을 갖도록 격려합니다.

우리의 짐을기도로 하나님 께 맡기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는기도로 우리를 진정시키고, 우리의 생각과 우선 순위를 명확하게하고, 우리를 그와 긴밀한 관계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 모델을 주셨습니다.

“이른 새벽 아직 매우 어두울 때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리고 시몬과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그를 뒤쫓았습니다. 만나서 말하되 다 주를 찾나이다 (마가 1,35-37).

예수님은기도 할 시간을 찾지 않으 셨습니다! 그는 많은 필요에 산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더 퍼집니다. 그리고 엄청난 인파가 모였다 그들의 병을 듣고 고침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물러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더니" (누가 5,15-16).

우리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으며 스트레스가 우리 삶에 퍼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기도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퇴각해야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철수하고 하나님 께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르타의 모범을 기억하니?

“그들이 길을 가다가 한 마을에 이르시니 마르다라는 여자가 그를 영접했습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누이가 있어 그도 예수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라 그러나 마르다는 많은 봉사로 매우 바빴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저를 도와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당신은 많은 일에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누가 10,38-42).

쉬는 시간을 갖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읍시다. 기도, 성경 공부, 묵상에 충분한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기가 어려워집니다.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기 위해서는 짐과 거리를 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무 숲이 보이지 않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께서 기독교인들로부터 절대 안식일을 기대하고 있다고 가르치 셨을 때, 우리는 이점이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밤까지,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바라건대, 적어도 우리는 우리 삶에서 안식의 원칙을 이해하고 유지해 왔습니다. 때로는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받는 세계에서 우리는 그냥 잠시 쉬어야합니다. 이것이 언제 이루어져야하는지 하나님은 지시하지 않으 십니다. 인간은 단순히 휴식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안식을 가르치 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모두 그에게 보고하였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조금 쉬라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먹을 겨를도 없었더라"(막 6:30-31).

갑자기 먹을 시간이 없을 때,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걱정을 하나님 께 던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말해 보자 :

• 우리는 우리의 모든 존재를 하나님 께 복종하고 그를 신뢰합니다.
•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입니다.
• 우리는기도로 시간을 보냅니다.
• 휴식에 시간이 걸립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지향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분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 삶에서 그분을위한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러면 그는 평화와 평화와 기쁨으로 우리를 축복 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에서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그의 부하는 쉽습니다. 예수님은 억압 받으 셨지만 결코 짓 눌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쁨 속에 살며 그분 안에 안식을두고 그분에 대한 모든 짐을 버릴 것을 신뢰합시다.

우리 사회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도 있고 때로는 더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은 공간을 창조 하시고 우리의 짐을지고 우리를 돌 봅니다. 우리가 확신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면서 삶을 살아나요?

시편 23편에서 우리의 하늘 창조주이자 주님에 대한 다윗의 묘사로 마무리하겠습니다(다윗도 종종 위험에 처했고 사방에서 압박을 받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는 내 영혼을 새롭게 합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당신은 내 원수들 앞에서 내 앞에 상을 차리십니다.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직 친절과 은혜만이 내 평생을 따라다닐 것입니다. 나는 영생을 위하여 여호와의 집으로 돌아가리이다”(시 23편).

Daniel Bö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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