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

647 신의 진노성경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 요하네스 4,8).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함으로 선을 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진노를 지적합니다. 그러나 순수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분노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랑과 분노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 선을 행하려는 열망에도 분노나 해롭고 파괴적인 것에 대한 저항이 포함된다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거스르는 모든 것을 물리치십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모든 저항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반대하십니다. 그는 죄와 싸우고 결국에는 그것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죄는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불쾌하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너무 가볍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이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해준다.

하나님은 죄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저희가 다 죄인이라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영광이 부족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된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공로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라"(로마서 3,23-24).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려 5,8).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시지만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죄는 미워하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과 피조물에 반대하는 모든 것에 가차 없이 반대하지 않으시고 그와 피조물과의 진정한 관계에 반대하지 않으셨다면 무조건적이고 포괄적인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것을 반대하지 않으시면 우리를 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일부 성구에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진노하신다고 알려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죄악된 생활 방식이 그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죄가 초래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죄인들이 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이 인간의 죄악에 의해 공격받을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의 길에 적대적입니다. 이처럼 멀고 적대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처럼 행동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와 자신이 서 있는 선하고 순수한 모든 것을 위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의 길과 행위를 단호히 반대하십니다. 모든 형태의 죄에 대한 그의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저항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며 그 자체로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의 죄를 대적하지 아니하시면 선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가 죄에 대해 진노하지 않고 죄를 심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죄가 절대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라는 악행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죄는 완전히 악하기 때문에 그것은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고 사랑이 많으신 그분의 가장 깊은 존재에 상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자신에게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으로 인한 모든 고통을 세상에서 제거하실 것이기 때문에 죄에 대해 끈질기게 적의를 품음으로써 죄를 물리치십니다.

적의의 끝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자신과 인류의 죄 사이의 원한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이러한 측정은 그의 존재의 본질인 그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1. 요하네스 4,8).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피조물이 그분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선택을 하도록 허용합니다. 그는 심지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에 반대하지만 그들이 그를 미워하도록 허용합니다. 실제로, 그는 그녀에게 "아니오"라고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아니오"에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예"를 확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운데서 우리 가운데 나타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사1. 요하네스 4,9-10).
하나님은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지워지기 위해 가장 큰 희생을 치르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음이 우리의 용서를 위해 필요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죄와 죄책감의 중대함과 죄가 우리에게 미칠 결과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 미워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 많은 피조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화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역을 통해 우리가 화해, 인간 본성의 심오한 변화, 그리고 값없는 선물로서의 하나님 안에서의 영생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아니오"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예"하신 것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에베소서 2,1-10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자까지 가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

태초부터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세상 죄를 용서하심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에베소서에서 1,3-8).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들의 상황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어떤 “진노”를 가지셨든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사람들을 구속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택하심을 받았으나 마지막 때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나시느니라”(1. 베드로 1,19-20). 이 화해는 인간의 욕망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우리를 위한 구속 사역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이 구속 사역은 죄에 대한 '사랑의 진노'로서 그리고 우리 개개인을 위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구원 사역과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2. 고린도 5,18); 예수님께서 우리의 형벌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는 우리를 형벌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인간의 삶의 우상에서 돌이켜 그와 진정한 관계에서 그의 용서와 새 삶을 감사하고 받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그 속에 아버지의 사랑이 없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교만한 삶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욕망과 함께 지나간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 요하네스 2,15-17). 우리의 구원은 "미래의 진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1. 테스 1,10).

인간은 아담의 본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적개심과 불신은 거룩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필요한 대응책을 만듭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그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인간의 노여움을 그치게 하려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의 아들의 죽음과 삶 안에서 그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그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으니 하물며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하물며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요”(로마서 5,9-10).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의로운 분노가 일어나기도 전에 없애려고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진노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유형의 일시적이고 이미 결의된 반대에 대한 말이 없습니다. 그들은 벌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들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가 그들에게 초래한 고통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분노라는 단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항상 하나님의 분노가 항상 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포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그치는 것을 보기 위해 행동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그의 분노는 죄의 결과가 파괴될 때 끝납니다. "최후의 파괴의 적은 죽음이다"(1. 고린도전서 1장5,26).

우리는 죄가 정복되고 멸망될 때 그분의 진노가 그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단번에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실 그의 평화에 대한 약속을 우리가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목하게 하셨고, 이로써 그의 진노를 가라앉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사랑을 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분노는 그의 사랑에 기여합니다. 그의 분노는 모두를 위한 사랑의 의도를 달성하는 수단입니다.

인간의 분노가 사랑의 의도를 무시할 정도로 충족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분노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경험을 하나님께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상숭배를 행하고 하나님을 마치 인간 피조물인 양 소개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아니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하지 않으나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은 계속될 것입니다.

핵심 구절

다음은 몇 가지 중요한 성구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타락한 사람들에게서 경험하는 인간의 분노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신성한 분노 사이의 비교를 보여줍니다.

  • "사람의 노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아니함이라"(야고보서) 1,20).
  • “화가 나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에베소서 4,26).
  • “나는 나의 맹렬한 노를 좇아 행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므로 너희 가운데서 거룩하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황폐케 하지 아니하노라 »(호세아 11,9).
  • «나는 그들의 배도를 고치고 싶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내 분노가 그들에게서 돌았음이라”(호세아 1장)4,5).
  • «주님과 같은 신이 어디 있습니까? 죄를 사하시며 남아 있는 기업의 빚을 사하여 주십니다. 그는 진노를 영원히 참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가 은혜를 기뻐하심이라!" (미카 7,18).
  • "주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나이다"(느헤미야) 9,17).
  • "내가 노할 때에 내 얼굴을 조금 네게서 가리웠으나 영원한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 5장)4,8).
  • «여호와는 영원히 거절하지 않으시며; 그러나 그는 그의 큰 선하심을 따라 잘 슬퍼하고 다시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근심하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죄의 결과에 대해 인생에서 무엇을 원망합니까?" (예레미야 애가 3,31-33.39).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악인의 죽음을 즐기고 오히려 그가 그 길에서 떠나 살아 남을 줄을 너희가 생각하느냐 (에스겔 1장8,23).
  •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므로 곧 형벌을 후회하시리라”(요엘 2,13).
  • «요나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스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고 인애가 크시사 재앙을 회개하게 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요나) 4,2).
  • «주님은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지체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약속을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너희를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원하시느니라”(2. 베드로 3,9).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라. 두려움 때문에 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이 온전하지 못하다"(1. 요하네스 4,17 마지막 부분-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6-17) 그렇다면 우리는 이 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죄에 대해 "진노하신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소멸하심으로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화목과 영생을 주시며 화목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세상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온갖 형태의 죄의 권세를 멸하여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의 영원하고 살아있는 사랑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폴 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