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땅에 사십니까?

696 신은 땅에 산다두 개의 잘 알려진 오래된 가스펠 노래는 "무인 아파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와 "내 재산은 산 바로 뒤에 있습니다."입니다. 이 가사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습니다. 그렇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하였으리라 (요한복음 1장4,2).

이 구절은 장례식에서 자주 인용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사후에 사람들을 기다리는 상을 준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까? 그가 당시 청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고려하지 않고 그가 한 모든 말을 우리의 삶과 직접 연관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전날 밤에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 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앉아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보고 들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들 가운데 배반자가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한 번만이 아니라 세 번 배반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는 고통과 배신과 죽음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새로운 왕국의 선구자이며 그들이 그와 함께 통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바랐습니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혼란, 절망, 부숴진 기대, 두려움과 감정.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것에 대해 반박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십시오!" (요한복음 1장4,1). 예수께서는 임박한 무서운 시나리오에 직면하여 제자들을 영적으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아버지 집에 있는 명칭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가리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루크 2,49).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동식 천막인 성막을 대신했습니다. 성막 내부(라틴어 성막 = 천막 또는 오두막에서 유래) 안에는 지성소라고 불리는 두꺼운 휘장으로 구분된 방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거처였습니다(히브리어로 장막은 «mishkan» = 거처 또는 거처를 의미함).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이 이 방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도록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주거 또는 생활 공간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사는 곳을 의미하지만 고정된 거처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다른 곳으로 인도한 여행의 중간 기착지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죽은 후에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천국은 종종 인간의 마지막이자 마지막 거처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할 처소를 예비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의 길은 그곳에 거처를 짓기 위해 곧장 천국으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다락방에서 십자가로 인도했습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과 함께 그는 그의 아버지의 집에 자기를 위한 처소를 예비해야 하였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곧 일어날 일이 끔찍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모두 구원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문맥에서 그는 그의 재림을 암시하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는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고대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길과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임을 압니다. 오순절날 성령의 모습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갈 때에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와 함께 있게 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장)고 말씀하셨습니다.4,3). 여기에서 사용된 "나에게 데려가다"라는 단어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시다. 그것들은 아들(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그러하시니라"(요한 1,1-2).

이 단어의 선택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설명하고 서로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친밀하고 깊은 대면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성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둘로 찢어졌습니다. 이 균열은 그것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상징합니다. 성전은 더 이상 이 땅에서 하나님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히 새로운 관계는 이제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저택이 많이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의 대속죄일에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신 안에, 그의 집에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아들이 육신이 되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면전에서 자신에게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로 이끌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가 어떤 죽음을 당할 것인지를 나타내려 하신 말씀입니다."(요한복음 1장)2,32-33).

그날 저녁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거하리라"(요한복음 1장)4,23). 그게 무슨 뜻인지 보이시죠? 이 구절에서 우리는 저택에 대해 다시 읽습니다. 좋은 집에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평화, 휴식, 기쁨, 보호, 가르침, 용서, 공급, 무조건적인 사랑, 수용, 희망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속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좋은 가정에 대한 이 모든 생각을 우리와 공유하고 그가 성령과 함께 그의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삶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과 아버지를 연합시킨 그 놀랍고 독특하고 친밀한 관계가 이제 우리에게도 열려 있습니다.4,3). 예수는 어디에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교제 가운데 아버지의 품에 계십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시요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나타내셨느니라”(요한 1,18).

"누군가의 무릎에 안겨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그의 팔에 안기는 것이고, 그의 가장 깊은 애정과 애정의 대상으로 그에게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 또는 속담에 따르면 그의 가슴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사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천국의 일부입니다.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늘에서 세우사”(에베소서) 2,4-6).

당신은 지금 어렵거나 낙담하거나 괴로운 상황에 있습니까? 안심하십시오. 예수님의 위로의 말씀이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분은 한때 제자들을 강화하고 격려하고 굳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네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십시오!" (요한복음 1장4,1). 걱정거리에 짓눌리지 말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그들이 용감해야 하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행복과 번영의 네 단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살 수 없는 천국의 집을 주어 당신의 모든 고통을 가치 있게 만들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와 하나님과 그분 집에 있는 생명을 갈라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도말되도록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도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이요, 우리가 화목하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사”(로마서) 5,10 NGU).

당신은 사랑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삼위일체 삶에 이끌려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대면하여 성부, 성자, 성령과의 친밀한 친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다윗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나의 평생에 복과 인자가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편)3,6).

하나님은 당신이 그분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시고 그분이 지금 대표하시는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지금과 영원히 그분의 집에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고든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