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믿어?

마리아와 마르다는 나사로의 장례가 있은 지 사흘 만에 예수님을 그들이 도시에 올 때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형제의 질병이 악화됨에 따라 그들은 치료할 수 있음을 알았던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나사로와 친한 친구였던 예수님이 그에게 오셔서 모든 것을 더 잘 돌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있던 곳에 머물렀다. 그는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자러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그들은 다시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침내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마르타는 형제의 시체가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음을 예수님 께 전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실망하여 끝이없는 아픈 친구를 돕기에는 너무 오래 기다린 데 대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나는 또한 실망했다 - 또는, 더 적절하다, 화가 나고, 화가 났고, 히스테릭적이고, 필사적이었다 - 그렇지 않은가? 왜 예수님은 동생을 죽게 내버려 두셨습니까? 네, 왜요? 우리는 종종 오늘날 같은 질문을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게하셨습니까? 왜 그는이 재난이나 재해를 허용 했습니까? 대답이 없다면, 우리는 화가 나서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타는 비록 그들이 실망하고 상처 받았으며 조금 화가 났지만 돌아 서지 않았습니다. John 11의 예수님의 말씀은 마르다를 안심시키는 데 충분했습니다. 구절 35의 그의 눈물은 Maria에게 그가 얼마나 흥미 있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제가 이정표가 되는 생일과 예수님의 부활인 부활절 주일을 축하하기 위해 두 차례 준비하면서 저를 위로하고 진정시켜 주는 말씀입니다. 요하네스에서 11,25 예수님은 “마르다야 걱정하지 말라 내가 나사로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다.”  

나는 부활입니다. 강한 단어. 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어떤 권세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갔다가 되찾을 수 있었습니까? (마태복음 2장6,61). 우리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와 제자들이 아직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을 압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이시며, 앞으로도 항상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활이십니다. 그것은 그가 생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은 신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그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I A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 임박한 생일은 저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할 이유를주었습니다. 예수님 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읽을 때, 나는 그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부활이자 생명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죽어야한다는 것을 알고 다시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네,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하지 않으면 어떻게 내게 남겨진 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

예수님은 무덤이 비었고 그리스도 께서 살아나 셨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다시 받아 들였기 때문에 나는 다시 살 것입니다. 행복한 부활절과 나를위한 생일 축하해!

Tammy Tkach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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