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현실

738 보이지 않는 현실당신이 장님으로 태어나서 나무를 본 적이 없다면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 식물에 대해 설명하더라도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무는 키가 크고 아름답고 장엄하지만 볼 수 없으며 그 표현력이 화려합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나무 그림자 사진을 보여주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시력이 좋지 않아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당신은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뭇잎의 색깔, 나무껍질의 질감 또는 기타 세부 사항은 모르지만 나무를 시각화하고 나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어휘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무가 실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신은 나무이고 예수는 인류에게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버지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성령을 계시하셨고, 그 계시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많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고 장엄하신지를 이해하기 시작할 만큼 충분히 보여 주셨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기껏해야 현실의 그림자만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요한 6,29)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추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믿음으로 고대인[조상들]은 하나님의 증거를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과 보이는 모든 것이 무에서 나온 것임을 압니다." (히브리서 11,1-3).

여기서 우리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으로 실재를 정의하기보다 하나님을 모든 실재의 기초로 보도록 격려합니다. “그[하나님]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거기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예수]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골로새서) 1,13-15).

하느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실재를 반영하여 그것을 더욱 현실적이고 가시적으로 보이도록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 자비, 은혜, 기쁨을 보거나 만질 수 없지만 이러한 자질은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각하는 물질처럼 멸망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실재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구할 때 우리는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들에 덜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성령의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의 믿음 안에서 살며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가 진정으로 있어야 할 사람이 됩니다. 세상의 아무리 많은 부도 그것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짝 엿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과 교제하며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그분의 왕국에서 영생이라는 선물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히버 티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