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736 신의 놀라운 사랑성탄절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믿을 수 없을 만큼 크신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친히 사람들 가운데 거하러 오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인간이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복음 어디에도 악의적인 사람들이 권력 정치를 펼치고 그들의 가장 큰 위협이신 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을 무기력한 공포 속에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지배계급은 예수가 죽고, 제거되고, 그림에서 사라지기를 원했고, 군중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우리는 이 사람이 현장에서 사라지기를 원합니다. 이 말에서 이해 부족으로 인한 큰 괴로움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우리 중 하나가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그분을 배척하고, 학대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그분의 한 말씀이 그분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천사들을 불러들였을 때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기꺼이 견디고 견디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지 못하고 즉시 열두 군단[즉, 무수한 무리]의 천사를 보내시리라고 생각하시나이까?" (마태복음 2장6,53).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증오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갑자기 번개처럼 강타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위엄의 구원의 영이 여기에서 작용했을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로마인들이 배척당할 것을 예견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그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그의 해결책을 무시했다는 사실이 그를 당황하게 했습니까? 아니면 전능자의 아들에 대한 인류의 부끄러운 거부가 처음부터 우리의 구원 과정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었습니까? 삼위일체의 화해의 길은 우리의 미움을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까?

화해의 열쇠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는 영적 소경과 그로 인한 심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미워하고 피로써 죽이는 것보다 더 비열한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그런 능력을 가졌을까요? 기꺼이 우리의 진노를 받아주시고 참으시며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타락 가운데서 우리를 만나 주신 주님의 속죄보다 더 숭고하고 개인적이며 실제적인 속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대해 지극히 진지하시며 우리가 모든 감각으로 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너무 혼란스러워서 두려움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피해 숨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진노의 희생양으로 보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그가 우리의 진노를 견디셨다고 말하는 신약에 계시된 훨씬 더 분명한 관점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조롱과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그분은 우리 존재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우리를 만나셨고 아버지와의 관계와 성령 안에서 그분 자신의 기름 부으심을 타락한 인간 본성의 세상에 가져오셨습니다.

성탄절은 우리에게 아기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성탄절 이야기는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무기력하고 부서진 본성에서 우리를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다가가기 위해 짐과 고통을 짊어지셨고, 심지어 우리의 고통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가기 위해 우리 적개심의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성령 안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우리의 조롱과 적대감과 거절을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구유에서 십자가 너머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

C 백스터 크루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