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276 그레이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기꺼이 베푸시는 과분한 은혜입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모든 행위에서 표현됩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과 온 우주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속량되고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며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구원의 기쁨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골로새서 1,20; 1. 요하네스 2,1-2; 로마인 8,19-스물; 3,24; 5,2.15-17.21; 남자 1,12; 에베소서 2,8-9; 티투스 3,7)

은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2,21. 유일한 대안은 같은 구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결합할 수 없는 대안입니다. 우리는 은혜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함을 분명히 합니다. 둘 다 선택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로마서 11,6). “만일 유업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약속으로 된 것이 아니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약속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셨다(갈라디아서 3,18). 구원은 율법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살게 하는 율법이 있을진대 의는 율법으로 말미암으리라"(21절). 만일 계명을 지켜 영생을 얻는 길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법은 누구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행실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 율법을 성취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행위가 우리 구원의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은혜의 공급에는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코 "충분히 선"하지 않을 것임을 항상 아는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의 행위가 구원에 기여했다면 우리는 자랑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에 대한 공로를 주장할 수 없도록 그분의 구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에베소서 2,8-9). 우리는 어떤 것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결코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진 것이 있다고 결코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닿아 있으며 기독교를 독특하게 만듭니다. 다른 종교는 사람들이 충분히 열심히 노력한다면 충분히 훌륭하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충분히 좋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으므로 다른 종교는 결코 충분하지 못합니다. 구원을받을 수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치가없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은혜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이 바울이 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결코 수천 년 동안 계명을 지키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없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과 은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계속하여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한 1,17). 요한은 율법과 은혜, 우리가 행하는 것과 우리에게 주어진 것 사이의 대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은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 생애는 은혜의 모범이었고 그의 비유는 은혜를 설명합니다. 그는 때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비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 5,7). 이 말을 통해 그는 우리 모두에게 자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이 점에서 하나님과 같아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소중히 여긴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풀게 될 것입니다.

후에 예수께서 악명 높은 죄인들과 사귀는 이유를 물으시자 백성들에게 이르시되 나는 자비를 기뻐하고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가서 9,13, 호세아의 인용문 6,6). 하나님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데 있어 완벽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자비를 베푸는 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범법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자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바라 십니다. 예수께서는 세금 징수 원들과 함께 먹고 죄인들과 이야기 할 때 이것을 예를 든다 - 그의 행동으로 그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와 대화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 하셨으며 우리가이 교제를하도록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은 두 빚진 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많은 빚을 지고 다른 사람은 훨씬 적은 빚을 졌습니다. 주인은 자기에게 많은 빚을 진 종을 용서해 주었지만, 그 종은 자기에게 빚을 덜 진 동료 종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노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시니 (마태복음 1장)8,33).

이 비유의 교훈 : 우리 각자는 우리 자신을 거대한 액수를 용서받은 첫 번째 종으로보아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먼 길을 통해 율법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 셨습니다 - 그리고 그는 또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원합니다. 물론 자비의 영역과 법의 영역 모두에서 우리의 행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해야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자비에 대한 부름으로 끝납니다(누가 10,37). 자비를 구하는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8,13-14). 재산을 탕진하고 집에 돌아온 탕자는 돈을 벌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입양되었습니다(누가복음 1장 절).5,20). 나인의 과부와 그 아들도 부활에 합당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동정심으로 이것을 하셨습니다(누가 7,11-1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예수님의 기적은 일시적인 필요를 해소시켜주었습니다. 빵과 생선 덩어리를 먹은 사람들은 다시 배가 고팠습니다. 자란 아들은 결국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최고의 은혜의 행위 인 십자가에서의 희생의 죽음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렇게해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 단지 일시적인 결과보다는 영원한 것.

베드로가 “오히려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니”(고전 1장)5,11).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행 1장)4,3; 20,24. 3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량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지음을 받았습니다(로마서 3,24) 정당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희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그가 십자가에서 하신 일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25절).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느니라(엡 1,7).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용서를 넘어섭니다. 누가는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다고 말한다(행 4,33). 하나님은 그들이 받을 자격이 없는 도움을 주심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아버지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녀들이 마땅히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받을 자격이 없는 선물도 줍니다. 그것은 사랑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합니다. 은혜는 관대함입니다.

안디옥 교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전도여행으로 보낼 때 하나님의 은혜로4,26; 15,40).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여행자들을 공급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을 믿으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돌보심에 맡겼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은혜의 일부입니다.

영적인 은사도 은혜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롬 1장)2,6).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에베소서 4,7). “각각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그 받은 은사로 서로 봉사하라”1. 베드로 4,10).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가 받은 신령한 은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1. 고린도 1,4-5).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풍성하여 그들이 모든 선한 일을 더욱 더 자라게 하시리라고 확신했습니다.2. 고린도 9,8).

모든 좋은 선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우리가 마땅히받을만한 것 대신에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새의 노래, 꽃의 향기, 어린이의 웃음을위한 가장 간단한 축복에 감사해야합니다. 인생조차도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입니다.

바울의 직분은 그에게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로마서 1,5; 15,15; 1. 고린도 3,10; 갈라디아서 2,9; 에베소서 3,7).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2. 고린도 1,12). 그의 힘과 능력은 은혜의 선물(2. 고린도전서 1장2,9). 하나님이 모든 죄인 중에서 가장 악한 자를 구원하시고 사용하실 수 있다면(바울이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반드시 용서하시고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그의 사랑과 선물을 주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은혜에 대한 우리의 대답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물론 은혜로. 하나님이 긍휼이 충만하심과 같이 우리도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누가복음 6,36). 우리는 우리가 용서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섬김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와 친절을 베풀어 친절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을 은혜로 충만하게 하라(골로새서 4,6). 우리는 결혼, 사업, 직장, 교회, 친구, 가족,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고 은혜롭고 용서하고 베풀어야 합니다.

바울은 또한 재정적인 관대함을 은혜의 행위로 묘사했습니다. 그들이 많은 환난으로 시험을 받았을 때에 그들의 기쁨이 넘쳤고 심히 가난하나 모든 단순함으로 많이 주었느니라. 내가 간증하노니 저희가 힘이 닿는 데까지 하여 저희가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렸느니라"(2. 고린도 8,1-삼). 그들은 많이 받았고 후에 많이 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는 것은 은혜(6절)와 관대함의 행위이며,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존경으로나 다른 어떤 면에서든지 간에, 우리가 자신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우리가 응답하는 적절한 방법입니다.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9절).

Joseph Tkach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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