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은혜

184 법률과 은총

몇 주 전 온라인 뉴스를 넘기면서 Billy Joel의 노래 "State of Mind New York"을 듣다가 다음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뉴욕주는 최근 애완동물의 문신과 피어싱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분명히이 관행은 추세가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최근 주에서 제정된 많은 법 중 하나일 뿐이었기 때문에 많은 뉴요커들이 이 법의 통과에 주목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모든 수준의 정부는 법을 준수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많이 채택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법은 사람들이 상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때때로 단순히 필요합니다. 어쨌든 뉴스 채널 CNN은 201440.000년 미국에서 개의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법이 있습니까?

주로 우리 인간은 죄를 짓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존 규정에서 허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점점 더 많은 법률이 필요합니다. 법이 사람들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필요한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법의 목적은 불완전한 사람들을 막고 사회 질서와 조화를 촉진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8,3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의 한계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다. 8,3 지엔). “율법은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에 반하여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이기적이고 죄 많은 우리 인간의 육신으로 보내어 죄의 속죄 제물로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가 그 권세를 행사했던 바로 그 자리, 곧 인간의 본성에서 죄를 시험하셨습니다.”

율법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모세 율법에 추가 조항과 추가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법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리 많은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그 법을 지킴으로써 온전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바울이 염려한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온전하고(의롭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은혜를 통해 사람들을 완전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율법과 은혜를 대조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미워하고 이율배반을 조장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율배반론은 은혜에 의해 도덕률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에서 구속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진실에서 더 멀리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법을 더 잘 준수하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불법이 존재하기를 누가 원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이 일깨워 주듯이 율법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7,12 (NEW LIFE 번역): "율법 자체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합니다." 그러나 그 본질상 율법은 제한적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가져오거나 죄책과 정죄에서 누구도 해방시킬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하거나 화목하게 할 수 없으며 더욱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예수님의 속죄 역사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갈라디아서의 바울처럼 2,21 [GN]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을 지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칼 바르트 (Karl Barth)는 스위스 감옥에 수감 된 사람들에게 설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함께 듣도록 부름 받은 것을 듣자.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아무도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이 진술이 사실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전달하려면 사도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가운데 전파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기에서 우리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정직한 뉴스이자 매우 특별한 뉴스이며, 가장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가장 도움이 되는, 실제로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 복음을 듣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효과가 없다고 두려워합니다. 법률가들은 특히 은혜를 무법 상태로 바꾸는 사람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예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 봉사함으로써, 창조주와 구속 주로서의 지위는 결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좋은 소식을 전하며 살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우리 삶에 개입하심에 대한 감사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Karl Barth는 "Kirchlicher Dogmatik"에서 신에 대한 이 순종은 감사의 형태로 시작된다고 썼습니다.

Barth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느님이 사랑하실 때 그분은 사랑하신다는 사실에서 그분의 가장 깊은 존재를 드러내시고 따라서 공동체를 찾고 창조하십니다. 이 존재와 행위는 신성하며 그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에서 다른 모든 유형의 사랑과 다릅니다. 은총은 사랑하는 사람의 공로나 주장을 전제로 하지 않고, 무가치함이나 반대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반대로 모든 사람에 의해 무가치하고 모든 저항을 극복하십시오. 이 구별되는 표시로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신성을 인식합니다.”

나는 당신의 경험이 법과 은혜에 관해서 내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너와 마찬가지로, 나는 법에 헌신하는 사람보다 사랑에서 멀어지는 관계를 갖고 싶어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우리는 또한 그분을 사랑하고 기쁘게하고자합니다. 물론, 나는 의무 의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처럼 그와 함께 봉사해야한다.

은혜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Billy Joel의 또 다른 노래인 Keeping the Faith가 생각납니다. 신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더라도 이 노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예, 예, 예, 예 믿음을 지키다 예, 믿음을 지킵니다. 네 저도 그렇습니다."   

Joseph Tkach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