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는 누구입니까?

barabbas 인 532네 복음서 모두 예수님과의 짧은 만남으로 삶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된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만남은 단지 몇 구절에 기록되어 있지만 은혜의 한 측면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바라바는 이 은혜를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때는 유대인의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바라바는 이미 구금되어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체포되어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자신에 대한 혐의가 없음을 알고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속임수를 썼습니다. “그러나 명절에 총독은 백성이 원하는 대로 죄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들에게는 예수 바라바라는 악명 높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이르되, 어느 것을 원하느냐? 바라바 예수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마태복음 2장)7,15-17).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폭동과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 사람을 석방하고 예수님을 백성의 뜻에 맡겼습니다. 그리하여 바라바는 죽음에서 구원받았고 예수님은 두 도둑 사이에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남자로서 이 예수 바라바는 누구인가? "Bar abba[s]"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단순히 바라바를 도둑처럼 집에 침입한 사람이 아니라 강도, 약탈자, 약탈자, 약탈자, 파괴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는 자들 중 하나인 "강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라바는 비열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짧은 만남은 바라바의 석방으로 끝나지만 흥미롭고 답이없는 질문을 남깁니다. 사건이 심한 밤 이후에 그는 어떻게 평생 남았습니까? 그는이 유월절 사건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았습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1. 고린도전서 1장5,3-4). 우리는 특히 부활절 시즌에 기독교 신앙의 이러한 중심적인 사건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석방된 죄수는 누구입니까?

석방된 사형수는 바로 당신입니다. 예수 바라바의 삶에서 싹튼 똑같은 악의의 싹, 똑같은 증오의 싹, 똑같은 반역의 싹이 여러분의 마음 어딘가에도 잠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당신의 삶에 악한 열매를 맺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23).

이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은혜에 비추어,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바라바와 달리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신약 성경의 많은 구절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실제적인 원칙을 제시하지만, 그 대답은 아마도 바울이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장 잘 요약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된 소망과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근신과 의와 경건함으로 살며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의 소유로 자기를 정결케 하셨느니라"(디도서) 2,11-14).

Eddie Marsh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