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은 어떤 몸으로 부활 할 것입니까?

죽은 자의 몸이 부활하게되는 388신자들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이 부활을 부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1.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신 15장, 강력하게 거부됨. 첫째, 바울은 그들이 또한 공언한 복음 메시지를 반복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몸이 무덤에 묻혔다가 사흘 만에 영광을 위해 다시 살아나신 것을 회상했습니다(3-4절). 그런 다음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선구자로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셨음을 설명했습니다. 4,20-23).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정말 사실임을 확증하기 위해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나셨던 500명이 넘는 증인을 불렀습니다. 그가 편지를 썼을 때 대부분의 증인은 살아 있었습니다(5-7절). 그리스도는 또한 사도들과 바울에게 친히 나타나셨습니다(8절).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기록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장사된 후에 육신으로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은 그분이 육신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5. 챕터는 이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께서 무덤에서 부활 한 것을 - 그러나 그는 고린도 그것은 무의미한와 신자들의 미래 부활을 의심 if'd 터무니없는 결과로 기독교 신앙에 대한 관련되지 않았 음을 알 수있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께서 부활하지 않으 셨으면 신자들은 희망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께서 부활 하셨으므로 신자들에게도 부활 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성도의 부활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다시 살리심을 통해 신자들의 미래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고 따라서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합니다(22-26, 54-57절).

바울은 이 좋은 소식, 곧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신자들도 그분이 나타나실 때 부활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반복해서 전파했습니다. 이전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1. 데살로니가 사람들 4,14). 바울은 이 약속이 “주의 말씀에 좇아 된 것”(15절)이라고 썼습니다.

교회는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이 소망과 약속에 의지하여 처음부터 부활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주후 381년의 니케아 신조는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생명을 기다리노라”고 말하며 주후 750년경의 사도신경은 다음과 같이 확증합니다. 죽은 자와 영원한 생명.”

부활시 새 몸의 문제

Im 1.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육체적 부활에 대한 고린도인들의 불신앙과 오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했습니다. 35). 여기서 질문은 부활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그리고 부활한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기 위해 어떤 몸을 받을 것인지입니다. 고린도인들은 바울이 이생에서 그들이 소유한 것과 똑같은 죽을 몸, 죄 많은 몸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왜 부활할 때 몸이 필요했을까, 특히 이 몸처럼 부패한 몸이 필요했을까? 그들은 이미 영적 구원의 목표에 이르렀고 오히려 육신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았는가? 신학자 고든 디 피(Gordon D. Fee)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인들은 성령의 은사, 특히 방언의 나타남을 통해 그들이 이미 약속된 영적, “하늘” 존재에 들어갔다고 믿습니다. 그들을 그들의 궁극적인 영성과 분리시키는 유일한 것은 그들이 죽을 때 버려야 했던 몸입니다.”

고린도인들은 부활의 몸이 현재의 육체보다 더 높고 다른 종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늘 왕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 이 새로운 “영적” 몸이 필요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지상 육체에 비해 천체의 더 큰 영광을 설명하기 위해 농업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는 씨와 씨에서 자라는 식물의 차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씨는 "죽거나" 죽을 수도 있지만, 그 결과 식물인 몸은 훨씬 더 영광스럽습니다. 바울은 “네가 뿌리는 것은 장차 올 몸이 아니요 밀이나 다른 것의 곡식일 뿐이니라”고 바울은 기록했습니다(37절). 부활한 우리의 몸이 현재의 육신의 모습과 비교하여 어떤 모습일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새 몸이 그 씨앗인 도토리에 비해 훨씬 더 영광스러울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우리는 영광과 무한함을 지닌 부활의 몸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현재의 육체적 삶보다 훨씬 더 웅장하게 만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으켜지느니라 비천함으로 심고 영광으로 일으켜집니다. 가난한 것으로 심고 권능으로 일으켜지느니라”(42-43절).

바울은 부활의 몸이 우리의 육체를 그대로 복제하거나 복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가 부활할 때 받는 몸은 우리의 지상 생활에서 썩거나 죽을 때 파괴되는 육신과 같은 원자로 구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외에는 2세, 20세, 45세, 75세 중 어느 몸을 받을 것인가?) 하늘의 몸은 땅의 몸보다 그 질과 영광이 더욱 돋보일 것이다. 고치 , 이전에 낮은 애벌레의 주거지.

자연 신체와 영적 몸

부활 한 몸과 불멸의 삶이 어떻게 보일지 추측하는 것은 말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 기관의 본질에 대한 큰 차이에 대해 일반적인 성명을 발표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 몸은 육체이므로 썩고 죽고 죄를 짓게 됩니다. 부활의 몸은 다른 ​​차원의 삶, 즉 불멸의 삶을 의미할 것입니다. 바울은 "육의 몸이 뿌려지고 신령한 몸이 일으켜진다"고 말합니다. "영의 몸"이 아니라 영적인 몸입니다. 부활 시 신자들의 새 몸은 "영적"일 것입니다. 즉, 비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변화되고 "영원히 성령의 생명에 합치되도록"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의미에서 영적인 것입니다. . 새 몸은 완전히 실재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육체가 없는 영이나 유령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현재의 몸과 부활한 몸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아담과 예수를 대조합니다. “땅에 속한 것과 같이 땅에 속한 것도 그러하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 그러하듯이 하늘에 속한 자들도 그러하니라”(48절).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담의 형태와 본성이 아니라 예수의 형태와 존재로 부활한 몸과 생명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49절). 바울은 주께서 “우리의 허무한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립보서 3,21).

죽음에 대한 승리

이것은 우리의 부활한 몸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몸처럼 부패하기 쉬운 살과 피가 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음식, 산소, 물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얻지 못하리니"(1. 고린도전서 1장5,50).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의 죽을 몸은 불멸의 몸으로 변화되어 더 이상 죽음과 썩어질 것이 없는 영원한 생명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갑자기, 순간적으로,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미래의 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한 은유]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51-52절).

불멸의 생명으로의 우리의 육체적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 희망의 기쁨과 자양분의 원인입니다. 바울은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켜 승리를 삼았다(54절) 하신 말씀이 응하리라”고 했습니다.

폴 크롤